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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

[記] 내 이야기 Scene #1. 유년시절

如月華 2009. 11. 24. 09:46

나는 1983년 서울의 변두리, 가리봉에서 태어났다.

언젠가 어머니께 여쭈어봤던 내 태몽은
'호박'이었다고 한다.
주로 여자아이들에게서 많이 보이는 태몽이라고
우리네 어르신들께서 말씀하시지만
논리적이거나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
또한 나는 남자가 아니던가.

풍요롭지도, 아주 가난하지도 않은 평범한 한 집에서 태어나
나는 그런 환경 속에서 평범하게 자랐다.
사실 대를 잇는 이씨집안의 장손과 장남을 한꺼번에 갖고 태어난 나는
유독 할머님, 할아버님의 사랑을 독차지 했던 것 같다.

물론 나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내가 두세살이 되던 때에 광명시 철산동으로 이사를 했다.
적어도 유치원은 그 곳에서 다녔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기도 하고
앞 집에 살던 누나와 친구 역시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에
더욱 확실히 기억한다.
어쩌면 유년 시절의 나의 터전이었던 그 곳을
항상 그리워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나서 내 동생이 태어났다.

어린 시절 우리는 대부분의 아이들과는 다르게도
집에서 둘이서만 보냈던 시간이 많았다고 한다.
나가서 놀지도 않고 조금 전에 말했던 그 앞집 친구들과
항상 서로의 집을 오가며 그렇게 함께 시간을 보냈다.
아무래도 그런 생활이 지금의 나의 성격에
밑바탕을 마련했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아직까지도 동생과 잘 노는 이유일지도 모르겠지.

유년 시절의 대부분의 기억은
어머니, 아버지, 혹은 할아버님, 할머님을 통해 들었던 내용이고
내가 기억나는 간간의 일들은 있지만 그렇게 많지는 않다.

철산동 주공 아파트 뒷 편으로 무슨 약수터가 있었고
그 곳을 가족과 함께 자주 갔던 것,

아파트 앞 쪽으로 있는 뜰에 나가
어머니와 함께 쑥을 뜯으며 보냈던 시간,

집 안 벽에 붙어있던 삼강오륜,

재롱잔치 때 내가 했던 패션쇼,

신기하게 그 패션쇼는
가르쳐주셨던 선생님의 모습까지
아주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 때 들었던 그 음악은
나중에야 알았지만,
Don McLean의 Vincent.

유치원까지 항상 타고다니던 미니버스 안에서
친구들과 장난치며 놀았던 기억도 난다.

사람의 기억은
단편적이긴 하지만
완전한 망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구로동으로 이사를 오면서부터가 아주 생생한 기억들이 많다.
학창시절의 보금자리 구로동.

좋은 기억보다는 좋지 못한 기억이 많은 것 같다.
아무래도 머리가 굳어가고 내 생각이 깊어가는 시기였기에
더욱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가족들은 1년이었는지 반년이었는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만 먼저 학교를 다니기 위해 구로동으로 왔다.
그 때 당시 엄마가 보고 싶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할머니와 함께 가리봉 끝자락에 붙어있는 학교까지
함께 걸어가곤 하면서
우리 할머니를 어머니로 오해하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 정도.

아버지가 면허를 땄던 것도 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였다.
차를 타고 다니시기 얼마 안 있어서 사고가 있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사고 이후에
직장까지 끝을 보면서 점점 우리 가족의 삶이 힘겨워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곧 이은 작은 집의 이혼.

당장 살 길이 막막했던 부모님은
동생과 나의 학업문제가 가장 걱정이셨겠지.
아마도 그랬기 때문에 그토록 서두르셨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인생의 항금기일 30대, 40대를
자식을 위해 고생만 하시다가 결국 지금은 집도 한 채 없으시지만...

사실 구로동에 처음 들어갔을 때에
나는 한옥집이라고 불릴만한 집의 형태에서 살았다.
집 안에는 마당도 있었고 큰 나무도 있었다.

'라일락나무'.

어린 시절 오르기도 많이 올랐고
나무 위 널찍한 곳에 몸을 눕히고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던 그 나무.
아마 지금은 도로가 된 땅 안에서
그 뿌리만을 간직한채로 간절히 빛을 바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은 나마저 서글프게 한다.

워낙에 낙후된 지역이었기에 동네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잠시간 셋방살이를 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이는 아버지 회사가 무너지기 2-3년 전의 일이다.

그 때 1층엔 상가용으로 방을 하나 내었다.
세를 주기로 했던 그 곳을 우리가 쓰게 될 줄은 몰랐겠지만...

처음에는 비디오 대여점이었다.
확실히 사건, 사고도 많았던 것 같고
내가 모르는 문제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꼭두 새벽부터 늦은 새벽까지의 영업과
쌓여가는 피로로 점점 지쳐가는 부모님의 모습.

그 때는 왜 몰랐을까.

가끔 내가 가게를 보면서
손님이 들어왔을 때 벨로 3층 우리집에 연락을 하면
저녁을 한창 준비하던 어머니가 뛰어오셨다.

왜 그 때는
그 모습이 슬프지 않았을까.

할머님, 할아버님까지도 비디오 가게에 신경을 쓰시며
한참을 고생하던 우리 가족.

하지만 아버지의 고통은 어땠을까.

뙤양 볕 아래 동대문 운동장의 부서진 의자를
뜯어내고 다시 고정하고...
직접 눈으로 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 때는 볼 수 없었기에 더 몰랐을 수도 있겠지.

아직 철이 들었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고
어른이라는 생각도 잘 들지는 않지만
지금은 조금 그런 생각을 해본다.

그런 옛 시간들을 이런 글 하나에 다 적어내기도 어렵고
나의 어린시절, 학창시절 속에서
방황하고 힘들어하던 내가 있었던 것은
오직 내 삶은 나라는 인물의 1인칭 관찰자 시점이기에.

하지만,
그 때는 알았다고는 했지만
가슴으로 느낄 수는 없었나보다.

아마 그 때는 지금보다도
훨씬,
훨씬 더
어렸기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 2007년 9월 1일,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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