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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 행복 철학, 故 마광수

如月華 2017.09.07 18:11




인생에 별 기대를 걸지 마라.


인생에 별 기대를 걸지 않고 사는 게 낫다. 과도한 기대는 과도한 절망을 가져온다. 허무주의를 삶의 지표로 삼아라. 어려움과 고난이 닥쳐 오더라도 어느 정도 견뎌낼 수 있다. 행복은 느긋한 체념에서 온다. 자존감, 의지력, 긍정적 사고, 패기, 용기 등의 말로부터 스스로를 압박하지 말고 괴롭히지 말아라. 인간은 우주 속의 한 알의 먼지 같은 존재이다. 인간의 삶에 의미를 두지 말라. 그러면 작은 행복감이나마 맛보게 된다. 굵고 짧게 살려고 하지 마라. 가늘더라도 길게 살고 보는 것이 더 현명할 수도 있다. 아무리 성공적인 삶을 산다 해도 인간은 결국 죽는다. 죽은 후의 내세 따위는 없다. 그런 것들은 전부 종교 산업에 종사하며 명예와 부를 챙기는 자들의 세속적 욕심이 만들어 낸 미끼일 뿐이다.




게을러져야 행복할 수 있다.


바쁘고 부지런하게 일하는 사람들에게 열등감을 느끼지 마라. 그런 사람들은 머지않아 기계(육체)가 고장 나서 죽는다.




싱글 라이프가 행복의 지름길이다.


결혼 안 하고 외로운 것이 결혼하고서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보다 훨씬 낫다. 굳이 같이 살고 싶다면 계약동거가 결혼보다 낫다. 옛말에 '자식이 웬수, 무자식 상팔자'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복습형, 예습형으로 본 행복론


부모에 대한 일체의 원망이나 감사의 맘을 갖지 말아라. 유교사상의 치명적 약점은 '옛날이 좋았다'는 과거 집착이다. 그래서야 어찌 행복을 누리겠는가? 불교사상 역시 현재 불행을 과거 탓으로 돌리라고만 한다. 현재 불행은 인내해서 참을게 아니라 개선해야 하는 것이다. 기독교 사상은 제일 심하다. 원죄라는 해괴망측한 망상에 얽매여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에 반대한다. 그때그때 직감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라. 잔머리 굴리면 자연의 선물인 본원의 원시적 생명력을 잃게 된다.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받아들여라.


조선왕조 시절 양반 상놈 구별이 있었듯이 지금도 귀족, 평민의 구별이 있다. 돈 많으면 귀족이고 없으면 평민이다. 평민에 속한다고 당장 자살할 게 아니라면 주어진 조건을 수긍하고 열심히 노력해보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역경에 처했을 때는 절망으로 도피하거나 억울해하지 말고 자신의 실존을 직시하라. 맘을 가라앉히고 자신의 운이 통할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야 한다. 궁즉통이다. 제 잘난 맛으로 사는 사람은 행복하다. 괜한 열등감에 시달리지 마라.




정치에 관심 두지 마라.


우리나라는 정치 과잉이다. 정치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정치, 문화, 경제가 삼권분립을 이뤄야 나라도 행복해지고 국민들도 행복해진다. 정치권력이 개인에게 미치는 힘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아나키즘'이 좋다고 본다.




야한 본성에 충실하라.


야한 마음을 갖고 살아야 행복해진다. '야한 마음'이란 도덕보다 본능에, 정신보다 육체에, 아가페적 사랑보다 에로스적 사랑에, 질서보다 자유에, 전체보다 개인에, 검약보다 사치에 가치를 매기는 마음이다. 일해서 버는 돈을 섹스와 놀이를 위해서만 써라. 정신적 성취감(교회에 갖다 바치는 현금 따위)를 위해서는 절대로 쓰지 마라. 인간 예수가 말한 '너희는 어린아이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얘기는 착하고 순수해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니다. 어린아이처럼 동물적으로 야한 욕심꾸러기가 되어야 살아 있을 때 행복하단 얘기다.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인간 예수는 '내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고 했다. 명언 중의 명언이다. 미래 걱정에 사로잡히다 보면 오늘이 피폐해진다. 인생의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두지 않는 게 좋다. 모든 일을 그때그때 가서 '벼락 직관'과 '벼락치기'로 대처하는 것이 행복한 삶에 유리하다. 행복한 삶은 미래를 차근차근 대비해가는 성실한 자세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 미래에 대한 태연한 방심 상태에서 이뤄진다. 살아 있을 때 실컷 쾌락을 즐겨라. 있지도 않은 내세를 위해 쾌락을 참아가며 기도만 하고 있는 것처럼 바보 같은 짓은 없다. 나는 지금까지 장편소설을 쓸 때 소설 전체의 줄거리와 플롯을 미리 구상해놓고 써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쓰다 보면 어떻게든 굴러가겠지… 하는 식으로 처음 부분부터 우선 쓰고 본다. 시작이 반이라고, 그런 식으로 맞춰가다 보면 어느새 장편 소설 한 편이 완성되곤 했다.




건강과 행복


비타민 노이로제에 걸리지 마라. 동물들은 그런 거 안 먹어도 건강하게 잘들 산다. 제약회사와 의사들의 합작에 의한 비타민 결핍 공포증에 속지 마라. 건강하게 살려고 술 끊고 담배 끊고 무공해 자연식 고집하고, 이런 식으로 살다 보면 돌연사나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 본원적 본능을 억눌렀기 때문이다. 최고의 건강법은 입에는 말이 적게, 머릿속에는 생각이 적게, 뱃속에는 음식이 적게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산다는 것 자체가 돌연사나 극심한 우울증의 원인이 된다. GDP가 아무리 높으면 뭐 하나. 질투, 중상모략, 튀는 놈 매장시키기, 상상을 초월하는 빈부격차 등 온갖 사회 병이 만연한 대한민국을 용기 있는 젊은이라면 하루빨리 뜨는 것이 행복한 삶을 유지하는 데에 유리할 수 있다. 많은 청소년들이 겪는 우울증이나 자살, 탈선 등의 원인은 한창 성욕이 끓어오르는 사춘기의 섹스(또는 대리만족을 위한 야동)를 단지 미성년자라는 이유만으로 가로막는 이상한 법규 때문이다. 성춘향과 이몽룡은 이미 15세에 질탕한 섹스를 즐겼다. 미성년자의 나이를 17세 정도로 개정하고 철저한 피임교육을 시킬 필요가 있다. 자유를 주면 자율이 생긴다.




고독을 기쁘게 감수하라.


혼자서 영화 보고 카페에서 커피나 술을 마시고 한가로이 산책할 수 있어야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어 행복해진다. 마음속으로라도 가족관계로 인한 온갖 의무감에서 탈출해 스스로 홀로 독립하기를 시도해보라. 그럼 차츰 행복해진다. 일체의 모임이나 조직에 가입하지 말고 스스로 홀로되어 삶을 당당하게 살 수 있어야 행복하다. 옛말에 '군자의 사귐은 물 맛 같고 소인의 사귐은 꿀 맛 같다'라는 좋은 말이 있다. 고독한 일상에서 기쁨을 맛볼 수 있어야 한다. 혼자서 시간을 처리해 나가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진한 우정도 없이 일부러 술 친구, 수다 친구를 만들 필요는 없다.




종교를 멀리하라.


기독교에서는 모든 사람을 죄인이라고 가르친다. 그런 쓸데없는 죄의식은 그 사람을 불행으로 몰고 간다. 기독교는 죗값에 대한 공포를 조장한다. 예수와 석가는 만민평등주의와 휴머니즘을 설파한 사회개혁가였다. 그러나 종교라는 권력 집단이 우상화하여 이용하고 난 뒤부터 그들은 공포와 전율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광적으로 종교에 빠져드는 사람은 정신의학자들은 일종의 정신병자로 본다. 그 사람의 삶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불행해진다. 평생을 원인 모를 '죄의식'에 사로잡혀 공포에 떨면서 산다면 도저히 행복해질 수가 없다. 대부분의 종교는 죄의식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신도를 겁주고 윽박지른다.




마음의 행복에는 허무주의가 답이다.


무슨 일을 당하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과도하게 기뻐하거나 슬퍼할 필요도 없다. '천치 같은 동심'으로 돌아가 무엇이든 덤덤해질 필요가 있다. 소금 없는 음식을 먹는 것처럼. 긍정적 허무주의야말로 고민으로 점철된 우리네 인생길에 위안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친구가 된다. 죽은 뒤의 일에 대한 관심을 끊고 오직 살아있을 때의 쾌락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쾌락주의적 허무주의의 요체다. 인생은 어차피 허무하고 부질없는 짓이다. 특별히 악을 써봐야 결국 남는 건 씁쓸한 절망감 뿐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내세에 대한 공연한 기대 심리로 이어져 정신분열적 광신을 낳는다. 육체적 쾌락에 대한 부정은 편협하고 가학적인 성품과 신경질적 적개심을 가져다준다. 허무주의자는 과대망상적 정신질환을 앓지 않는다. 조울증에도 안 걸린다. 기대가 없으니 절망도 없고 평정한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들은 생의 본질이나 죽음의 본질 따위를 캐 보려고 하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인생을 담담하게 살아가기 때문에 마음이 늘 행복하다.




용감보다는 비겁을 선택하라.


을사늑약 때 분에 못 이겨 자결한 민영환 선생이, 자신이 비겁하다고 느끼더라도 악착같이 살아남아 끈질긴 독립운동을 했더라면 조국에 훨씬 더 보탬이 되었을 것이다. 어떤 자살도 용감하지 않다. 남들이 비겁하다고 할지 언정 질깃질깃 살아남아 길게 보고 차근차근 목적을 이뤄 나가야 한다.




남의 눈치를 보지 말고 살아라.


우리는 혼자 나왔다, 혼자 죽는 외로운 인생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부모, 형제, 남편(아내), 친구, 결국엔 다 소용없다. 그러니 어떤 사람의 눈치도 보지 말고 의지도 말고 살아야 한다. 그러한 처신의 결과는 '실질적 행복'으로 내게 되돌아온다. 고독은 의존심에서 온다. 징징거리지 말고 당당한 나르시시즘으로 고독에 맞서야 한다. 설사 욕을 얻어먹더라도 언제나 '독불장군'이 되어라. 그러는 것이 결국에 가서는 행복한 삶의 획득에 유리하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가 아니라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가 맞다.







지난 5일 유서 한 장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셨던 마광수 교수님의 에세이가

오늘 포털에 회자가 되고 있어서 발췌해 보았습니다.


열심히 살고 있지만 그저 열심히 사는 것일 뿐이고,

이전 세대에 비해 풍요로워진 경제적 환경 속에서도 빈곤한 감정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절망과 허무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만 내용인듯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행복에 보다 수월하게 다가갈 것을

오늘 교수님이 남기셨던 글을 통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해가 우리의 삶을 내일부터 당장 바꿔줄 수는 없겠지요.

어쩌면 평생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늘 그래왔던 것처럼' 살게 될 것 같습니다.


마치 이런 모든 것을 알고 계셨던 교수님 역시

스스로 삶을 마감하실 수밖에 없던 이유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시대를 너무도 앞서가셨던 교수님의 영면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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